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지은이: 김정선
- 출판사: 유유
어릴 때부터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고 살았다. 신문 스크랩도 하고, 초등/중등/고등 필독서도 읽고, 논술 술도 배우고. 논술 시험을 볼 때, 에세이 과제를 쓸 때, 자소서를 쓸 때나 되어서야 '맞아 글쓰기가 중요한데 말이지'라고 생각하지 어떻게 하겠다는 행동을 취한 적은 없었다.
취업을 하고, 일을 하다보니 정작 글 쓰는 건 회사에서 더 많이 했다. 제안서, 보고서, 설계서 등 -서로 끝나는 문서들은 모드두 글쓰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물론 "잘 쓴" 글 말이다. 깔끔하고 담백하면서 명료한 그런 잘 쓴 글.
대통령의 글쓰기의 저자가 어느 강연에서 말하기를, 같은 맥락의 서술어를 다양하게 쓰면 글이 훨씬 풍부해보인다느 말을 한 적이 있다. 제안서 따위를 써야 하는 순간에 깔끔하고 담백하면서 명료한 잘 쓴 글을 쓰기 위해, 지루하지 않고 글이 풍부해 보이기 위해 한동안 한자어를 마구 남발한 적도 있다. 하지만 문서의 핵심은 소통인 것을 간과했다. 그저 핵심을 잘 표현하고 앞뒤 맥락이 잘 이어지는 글이면 되었을텐데.
또 이렇게 블로그를 이따금씩 쓰다보니 내 글쓰기 습관이 보였다. 고등학교 때 문학 시간에 배운 나쁜 글쓰기를 지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쿠세(습관이란 일본어인데, 야구에서 말하는 쿠세처럼 부정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가 있었다.
그래서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오히려 어릴 때보다 일을 하고 나서 더 많이 든다.
그러던 중 이 책을 발견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정말 제목 잘 지었다. 이 책을 발견한건 리디셀렉트였다고 기억하는데, 반납 기한까지 손을 못댔다. 그리고 잊혀졌었는데, 최근에 우연히 친구 책장에서 발견했고 친구를 기다리며 읽었다. 생각보다 책 두께가 얇았고, 글쓴이의 원칙? 말? 사이사이 에피소드가 들어 있어서 쉽게 읽혔다. 아쉽게도 당시에는 완독하지 못했고, 밀리의 서재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완독했다.
(아마도 가상의 인물일) 함인주 작가와 작가의 글을 교정하는 화자(아마도 글쓴이)가 대화하는 내용은 매우 흥미롭다. 중간중간 이해하지 못한 내용도 있지만, 각자의 입장에서 문장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는지가 보인다. 그리고 문장을 대하는 서로 다른 태도에 대해 토론하는 방법도 꽤 신기했다. 내가 그 토론 내용을 100% 이해한 건 아니지만(함인주 작가에 따르면 풍경을 바라봤지만) 내가 글 쓰는 태도를 돌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대화엔 작은 반전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아는 사동/피동, ~에 의한 등의 표현 외에도 일상에서 흔하게 씀에도 어색함을 느끼지 못한 사례들이 나와서 잘못된 표현을 스스로 교정해볼 수 있었다. 결코 쉽지 않았다. 예컨대, '시작하다'를 붙여도 되는 것과 어색한 것을 설명하는데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O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다. X
색은 시작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마음은 시작점을 콕 찝을 수 없기 때문에 어색하다고 했다. 그런데, 재료가 동나는 것은 시작, 전개, 끝맺음이 따로 없는 변화이기 때문에 역시 '시작하다'를 붙이기 어색하다고 했다.
재료가 동나기 시작했다. X
재료가 동났다. O
알듯 말듯, 어려웠다.
'접속사는 삿된 것이다'라는 제목이 나왔을 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글만 봐도 내 글엔 접속사가 넘친다. 심지어 내가 이미 인지하고 있는 '쿠세'다. 이 접속사 한정으로 변명을 좀 해보자면, 아니 '-인 것 같다'라는 표현이 만연한 것과 함께 변명을 좀 해보자면 말과 글의 무게를 알아서 그 무게를 좀 내려놓고 싶은 마음에 남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이 -라고 생각한다 마저 그 예시일 것이다)
삿된 주어들은 지시 대명사나 인칭 대명사로 가리켜지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 그녀, 그것, 그들. 김훈은, 소설 문장에선 금기시하는 반복된 호명을 감수하면서까지 주체를 오직 이름으로만 불러낸다. ‘그’라거나 ‘그녀’라는 삿된 대명사를 좀처럼 쓰지 않는다. 주어라면 모를까 주체는 손가락질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리라. 그리고 김훈의 주체는 주어와 달리 첩질을 하지 않는다. 서술어를 여럿 거느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정선 지음
읽는 동안 절대적으로 이게 맞다/아니다로 표현하지 않고, 자연스럽다/어색하다라고 말한 화자는 이 부분에서 유독 세게 표현했던 화자였다. 삿된 접속사와 지시/인칭 대명사는 화자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요소인듯 하다. 덕분에 여러번 반성하게 되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하지 않으려면
내가 쓰고 싶은 말이 명확히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한글 문장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읽고 쓴다.
내가 셋팅한 글자 크기와 줄간격 기준으로 밀리의 서재에서 183페이지 분량이었는데, 실제 책 내용은 153페이지면 끝났다. 정말 가볍게 호로록 읽기는 좋지만 예시들을 찬찬히 읽으면서 보는 걸 추천한다.